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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남자 김준규, 보고 싶은 김준규

 


“일선 검사장이야 다음에 하면 되죠.”

2006년 2월, 장관이었던 나는 당시 법무부 법무실장 김준규 검사에게 그 자리를 1년 더 맡아 달라는 요청을 했고, 그가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나에게 했던 말이다. 법무실장이라는 자리가 2년씩 할 정도로 매력이 있는 자리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또 내가 향후 인사에서 그 어떤 보상을 해줄 수 있으리라는 기약도 없었다. 그럼에도 김준규 검사는 너무도 흔쾌히 나의 요구를 받아주었다.


상관으로서 인간적인 미안함을 무릅쓰고 김준규 검사를 법무실장에 유임시켰던 이유는 ‘검찰의 변화’를 이끌 여러 가지 일들을 마무리하기에 그가 적임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법무검찰의 변화전략계획을 마련하는데 누구보다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나와 함께 이자제한법, 이중대표소송제 등을 입안하고 성공적으로 추진하여 법무검찰을 민생부처로 탈바꿈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물론 지금의 법무검찰은 그 훨씬 이전의 과거로 회귀하고 있지만.


“검찰이 새롭게 변모할 때다.”

김준규 검사가 검찰총장으로 내정된 후 처음으로 했다는 말이다. 내가 검찰의 변화를 위해 선택했던 사람이 이제는 스스로 검찰의 수장으로 발탁되어 제일 먼저 ‘검찰의 변화’를 언급했다는데 묘한 떨림을 느낀다. 유난히 ‘검사스럽지’ 않았던 그, 장관 앞에서도 안경을 머리 위에 얹고 팔을 걷어붙이며 스스럼없이 일했던 그가 기억난다. 나는 김준규에게 ‘아는 남자’이고 그도 나에게 ‘아는 남자’이다.


감히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하는 것만큼 건방진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내가 그와 함께 일했던 것은 불과 13개월. 그것도 장관과 참모로서 맺어진 관계에서 그의 진면목을 봤으면 얼마나 봤겠는가? 13개월의 경험이 나의 뇌에 기억시킨 ‘아는 남자’ 김준규는 유연하고, 소통에 능하고,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 사람이다. 시쳇말로 ‘쿨’한 검사다. 나는 그를 좋아했고 그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나에게 ‘아는 남자’ 김준규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랬던 그가 검찰총장으로 내정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개인적으로 매우 축하할  일이다. 처음으로 그 말을 들었을 때 ‘어허 이 사람들 봐라’했을 정도로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도저히 이명박 정권이 선택할 만한 사람이 아닌데 무엇이 이 사람을 치안독재의 가장 중요한 포스트인 검찰총장의 자리까지 이끌게 했을 것인가? 내가 아는 김준규와 그들이 아는 김준규는 다른 사람일까?


검찰을 잘 아는 사람들은 김준규 검찰총장 내정자에 대해 몇 가지 우려를 가지고 있다. 위장전입이나 변칙증여와 같은 도덕성의 문제는 오히려 사소한 문제이다. 정치권력으로부터 검찰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거대권력의 횡포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검찰을 만들 수 있는 적임자인가에 대해 물음표를 던진다. 청와대가 그를 ‘다루기 쉬운 사람’ 정도로 인식하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이다. 기존의 검찰인사 관행을 무시하고 검창총장이 청문회를 앞둔 시점에 검사장 승진인사를 단행한 것 자체가 이 정권이 그를 무시하고 있다는 증거는 아닐까? 공안검사와 특정지역과 학교출신 인사가 중용된 이번 인사의 결과는 최소한 내가 아는 김준규의 뜻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김준규는 검찰총장으로 적격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검찰을 최전선의 민생보호기관으로 변화시킬 능력과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 누구보다 합리적이다. 공정한 시장경제질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내일 인사청문회에서 김준규가 보여주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내가 아는 남자’ 김준규의 모습이다.


나는 김준규 내정자가 내일 인사청문회에서 딱 한 가지만 약속해 준다면 많은 사람들이 나의 견해에 동의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바로 용산참사 수사기록을 공개에 대한 약속이다.

도대체 용산참사와 관련된 수사기록을 내놓지 않을 이유도 법적 근거도 없다. 끝까지 수사기록을 내놓지 못하겠다고 버틴다면 검찰이 발표한 진실은 왜곡된 것이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항간에서는 검찰 수사기록에 이명박 정권과 경찰을 결정적으로 곤혹스럽게 할 그 무언가가 있다는 의혹도 있다. 이런 의심과 의혹을 밝히기 위해 용산참사 수사기록은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

용산참사 수사기록 공개는 검찰의 중립성과 권위를 회복하는데 있어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지금 검찰은 이명박 치안독재정권의 하수인으로 매도되고 있고, 정치적 중립성도 심각하게 의심받고 있다. 검찰의 자존심을 살려야 한다.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선언해야 한다. 용산참사 수사기록 공개가 그 전환점이 될 것이다. 후배 검사들의 자존심을 살려줄 수 있는 결단이 될 것이다.


‘아는 남자’ 김준규에게 바라는 일이 참 많다. 검찰 총수로서 민생을 제일 먼저 챙겨주었으면 좋겠고, 공정한 시장경제 확립을 위해 거대권력의 횡포에 맞서 싸워주었으면 좋겠고,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지키는 든든한 수호자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이 모든 것을 할 의지와 능력이 충분한 사람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부탁과 조언을 해주고 싶다. 나는 내일 하루 종일 고생스러운 인사청문회에서 거침없이 자신의 소신을 말하고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는 김준규를 보고 싶다. 내가 ‘보고 싶은 남자 김준규’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