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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를 어이할꼬?' 천정배의 소통2.0

 

의원직을 내려놓으니 흉금을 털어놓을 '소통'의 기회가 많아졌다. 천정배 당원이 지난 14일 또 한 번 의원회관 128호를 찾았다. 이번에는 특별히 국회와 정치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가졌다. 이번 간담회를 통해 천정배 당원은 언론법 강행처리에 대한 설명과 정치인으로서 한국정치에 대한 자신의 견해, 질의응답 등의 시간을 가졌다. 천정배 당원과 학생들의 오고간 진솔한 이야기를 여기에 소개한다.   



'한국정치를 어이할꼬?' 천정배의 소통 2.0




사실은 제가 현재 국회의원직을 사퇴한 상황입니다. 엊그제 저한테 연락해주신 분이 제프리 존스 선생입니다. 미국인이시지만 한국인보다도 더 한국을 잘 아는 분입니다. 

제프린 존스 선생이 오늘 여기 나오라고 해서 저는 의원직을 사퇴했는데 국회의원도 아닌 사람이 뭘 나가냐 했는데, 괜찮다 그러시더라고요.

제가 의원직을 왜 사퇴를 했느냐, 지난 7월 22일 국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러분이 아시죠?

그날 언론악법의 강행처리에 항의해서 제가 의원직을 사퇴했습니다. 지금 제가 야당의 정치인이기 때문에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야당이라는 제 당파성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제 당파성에 기초해서 말씀을 들어주시고 천정배를 인정해주길 바랍니다.

이명박 정권이 그동안 국민과 야당을 워낙 무시하고 있습니다. 3년 가까이 임기가 남아있지만 이런 상태로 있어봤자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사퇴했습니다. 사퇴한지는 약 3주일 됐고요. 오늘 여러분들이 오신다고해서 할 수 없이 저도 왔습니다. 이 방 128호는 제가 처음 국회의원을 시작할 때 사무실로 썼던 방입니다. 

▲눈부시게 발전한 나라, 대한민국

요즘은 의원직을 사퇴하고 35년만에 넥타이를 처음 풀고 다니고 있습니다. 자유롭고 좋습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한국인인 것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물론 여러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세계에서 대한민국만큼 이렇게 눈부신 발전을 한 나라가 없는 거 같습니다.

저는 1954년생입니다. 여러분 일제식민지 1945년 그리고 한국전쟁이 1950년에 일어나서 53년에 휴전이 됐잖아요. 또 우리 내부에 내전으로 엄청난 웬만한 사람은 다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희생을 치렀던 나라 아니겠어요? 문화적으로 물질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 상태의 나라가 지금 와서 누가 50여년 만에 경제적으로 상당히 성공했잖아요. 지금 뭐,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수준이 세계에서 거의 열 번째 경제적으로 강국에 가깝잖아요. 실질적으로는 열 세 번째 정도 된다고 하던데, 그러나 아홉 개 국가는 뚜렷이 앞선 거고 15번째까지는 비슷하죠.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시작은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경제개발 5개년을 시작하면서부터 입니다. 그 당시에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약 70불에도 못미친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쨌거나 지금 몇 배의 성장을 했나요. 200배 이상이죠. 물론 그동안에 몇 십 배 잘 살게 됐죠. 아직은 선진국이 아니지만 곧 선진국 문턱에 이를 것 같아요. 후진국에서 태어나서 선진국에서 죽는 사람들이 인류역사상 아무데도 없을 것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시대도 없었던 일입니다. 일본이 경제 성장이 빨랐어도, 대개는 아버지가 후진국에서 시작하여 자식들 세대에서나 선진국에 진입한 정도입니다.



▲한국정치는 대통령의 식민지


저는 이명박 정권이 파괴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여러분들이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대해서는 아주 자랑스럽고 미래에 대한 낙관을 가지고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한국정치는 굉장히 후진적이죠. 한국은 아직 민주주의 역사가 짧습니다.

54년에 태어났는데, 돌아보니 가장 암흑시대는 전두환 초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공포였어요. 우리가 택시타고 가다가 끌려가서 고문 받거나 처벌받거나 될지 모르는 시대였어요. 식당에서도 친구와 이야길 할 때도 고문당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시대였어요. 그리고 두 번째 암흑 시기는  박정희 유신, 1972년부터 1979년 사이였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정치는 대통령의 식민지입니다.

국회에서 지난 7월 22일 날 의원들끼리 몸싸움 하고, 언론 법을 날치기 강행처리가 모두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벌어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무방합니다. 아직은 민주주의라는 것은 뭡니까. 삼권분립. 입법부와 행정부와 사법부, 이 세 개 기관이 견제와 균형이 잘 이루어져야 하는데, 국회와 정당은 대통령이 속해있는 정당이 장악하고 지배해왔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한국정치의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정책’ 무관심한 한국정치, 가장 예외적 정치인 ‘김대중’


사실은 정책에 관해서 국회의원이 일을 하려고 해도 별로 할 일이 없습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우리의 정치는 정책에 대해서 매우 무관심 해왔어요. 달라지긴 했지만,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정책을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정책에 대해서 사람들이 무관심했고 알지 못했습니다.

저게 진보인지 보수인지 알지도 못했습니다. 요새 와서 물어봅니다. “천정배 당신이 진보적인 사람이요, 보수적인 사람이요? 민주당 정체성 뭐요?” 이제야 물어봅니다. 불과 4-5년 전의 일입니다.

정치집단, 정치인 개인을 통틀어 아주 예외적인인 정치인이 있어요. 그 사람이 바로 지금 병상에 누워 계신 ‘김대중’입니다.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김대중이라는 정치인이 정책적 입장을 잘 정립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려고 하고, 추진하려고 노력을 한 유일한 정치인 같아요.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여러분이 묻는 질문에 답을 하는 형식으로 하겠습니다.  


어떤 정치인이 되고 싶으신가요?

저는 중고등학교를 목포에서 나왔는데, 그때 우리 지역구 국회의원이 김대중 대통령이었습니다. '아, 나도 김대중 의원 같은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없지 않아 있었어요. 그 후 대학에 들어갔는데, 그 해가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쿠테타가 일어나던 때였습니다.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군대도 갔습니다. 1980년대 광주항쟁을 군대 생활할 때 겪었고, 1981년에 군 제대 후 판사나 검사가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검사가 되고 싶다 생각했었어요. 막상 검사가 되려고 보니까 전두환과 같은 폭력적인 정권 밑에서 검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상태로 1995년을 맞았는데, 그 때 김대중 대통령이 복귀하고 당을 만들면서 저뿐만 아니라 젊고 참신한 사람을 영입을 했어요. 정당에 활동하면서 국회의원 활동을 할 수 있도록 15대 국회에 들어오라는 권유가 왔어요. 입문하게 된 거죠.
그때 제 생각은  단순했습니다. 김대중 총재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고, 수평적인 정권교체를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정치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김대중 총재가 대통령이 됩니다. 97년이 되어서 불과 1여년 만입니다. 그 다음엔 뭘 하지라는 생각을 하다가 정치개혁을 목표로 정치활동을 하였습니다. 나름대로 한국정치 개혁에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요즈음은 조금 더 포괄적이기도 한데, 한국사회가 경제발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 보통 사람들의 민생은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15%에 이르는 사람들이 빈곤층이라고 합니다. 직장 걱정 안하고, 노후걱정 안 하고, 국민 사교육비 없는 세상, 신혼부부가 작은 집이라도 갖고 걱정 없이 사는 세상, 민생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



☞ 열린 우리당부터 시작해서 민주당이 지은 죄가 큽니다. 참여정부 노무현 정권 때 정권재창출에 실패하고, 국민 지지도 많이 떨어지고 참패를 했던 것을 막지 못했던 원인은 무엇입니까? 개인적으로 볼 때는 천 의원님께서 가지고 계신 영향력이 약하지 않은가. 민주당의 세력이 너무 약화되지 않았는가. 대통령 한 명 바뀌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되었는가. 왜 노무현 정권과 함께 하지 못했는가. 엘리트 코스를 달리셨는데 융합되지 못하고 분열 되었을까요?      


이건 진짜 아픈 질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민생문제를 기대만큼 잘 못했다고 봅니다.

가볍게 이야길 해보면, 우선 아까 상대적 빈곤율을 이야기했잖아요? 1998년에는 그게 악화되어서 12% 되었습니다. 2008년에는 14%로 악화되었다. 그 시기를 보면 1998년부터 2008년이 김대중 대통령, 천정배가 여당이던 시절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빈곤율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대통령 선거도 참패하고 전 총선 참패 원인으로 보고 있고요. 왜 그렇게 되었느냐는 여러 견해가 있겠습니다. 주권자인 국민들이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느냐를 잘 받아들여서 그 뜻대로 하는 것이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하늘처럼 받들겠습니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때는 그저 멋진 정치 수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김대중 대통령께서 정말 도력이 높은 정치인이구나 요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명박 정권 소통 전혀 안 되지 않습니까? 우리도 그 부분에서 많이 부족했습니다.


둘째는 언론권력의 편향성입니다.

미국에서 작년에 오바마가 흑인 최초 대통령이 됐죠? 두 가지가 주목되는데, 하나는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 때가 되면 유수한 신문들이 공식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죠. 어떤 신문은 오바마, 어떤 신문은 매케인. 지난번에는 오바마가 압도적으로 많았죠.

조중동은 민주당에서 하나님이 내려와서 출마해도 지지 않을 거 같은데요? 작년에 오바마 대선자금을 모금하는데, 매케인보다 훨씬 많았죠? 놀랍더라고요. 한국은 어떻습니까. 만약 한나라당이 돈을 100을 벌 수 있으면 우리는 한 10이나 1밖에 못 버는 것 같아요. 힘의 차이가 워낙 큰 거란 말이에요. 현실적인 '돈'과 '언론'이 없이도 정권교체를 하고, 10년동안 민주당이 여당일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의 힘이 엄청났기 때문입니다.

보수언론 못지않게 진보적 언론이 주장할 수 있는 사회, 미디어 다원주의가 실현될 수 있어야 민주주의가 아니겠어요? 100은 아니더라도 우리도 한 50은 조달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페어플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끝으로
국정을 잘 이끌어갈 수 있는 내부의 조직화가 부족했습니다. 

지지층과도 서로 힘을 합쳐서 가야하는데, 우리 내부가 흩어지고 서로 불신했던 것입니다. 사실 스스로 무너졌다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조직화하지 못했다. 국민들을 실망시켜서 재작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이라는 최악의 역사를 만들었죠. 사실 저도 책임이 큽니다. 그래서 지금 벌충하기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사력을 다해서 해야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일시: 2009년 8월 14일 오후 3시
장소: 국회의원회관 1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