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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이슈따라잡기

민주당 쇄신모임, 한국 민주주의와 야당에 대해 논하다

박상훈 대표


 

한국 민주주의와 야당 - 관찰자의 시각에서


박상훈(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1. 민주주의와 야당


- 민주주의를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야당이 있는 정치체제”

- 야당이란,

  소극적인 차원에서는) 반대를 통해 집권당 견제와 정치체제의 균형 유지자,

  적극적인 차원에서는) 대안 정부(alternative government: Eric Hobsbawm) 즉 내일의 여당

- 민주주의란 오늘의 야당이 내일의 여당이 되는 것이 허용되는 체제,

  달리 말해 여당이 패배할 수 있는 체제여야 하기 때문

- 그렇다면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야당이란 어떤 존재?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는 야당 있는 정치체제라고 할 수 있나?

  정치체제의 균형 유지자이면서 대안 정부로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나?



2. 야당 집권기(1998-2007년) 이후의 한국 정치


- 강한 정치적 적대, 낮은 투표율,

- 민주화 이후 20년 동안 30% 가까이 하락,

  민주주의 역사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투표율 하락,

  명실상부한 제1당은 무당파,

  이번 선거에서 투표율 오를까? 회의적.

- 집권 초부터 야권 내지 진보개혁 진영을 지배해 온 것은 반정부 직접투쟁론 내지 이른바 "반MB연합론"

- 그렇다면 정치학의 이론(“경쟁성과 투표율 사이의 定의 함수관계”)이 맞지 않는 사례 등장한 셈,

- 왜 투표율 낮은가,

- 투표율이란 특정 정치체제에서 적극적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한 유권자의 규모를 상징하는 가장 간단한 지표

- 누가 투표하고 누가 투표하지 않나,

- 상층은 민주주의를 통해 소득을 높이는 방법에 적응

- 반면 하층은 민주주의가 자신들의 상황을 개선하게 하는가에 대해 매우 강한 회의

- 김대중, 노무현정부로 이어진 야당의 집권조차 이를 역전시키지 못했음 혹은 야당 집권의 경험이 더욱 그런 판단을 강화시켰다고 볼 수도 있어


- 결국은 지금의 야당이 미래의 대안이 될 수 있느냐에 대한 강력한 회의가 오늘의 한국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

- 2006년 지방선거에서부터 나타난 한국정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이른바 민주당과 그 지지기반 사이의 유대가 급격히 약화된 것,

- 지역적으로는 수도권과 호남에서 수도권 이탈, 계층적으로는 하층 지지기반의 투표 참여 급감, 도시의 교육받은 개혁적 중산층의 이탈 등으로 나타나

- 이 패턴은 2007년, 2008년 선거에서도 그대로 재현

-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이런 악순환의 반복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3. 지금 민주당은 어떤 정당인가


- 정당을 평가하는 세 가지 차원:

1) 정부와의 관계 2) 유권자 속의 정당 3) 조직으로서의 정당


1) 정부와의 관계 :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정부와 연합할 능력(coalition power) 혹은 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정부를 협박할 능력(blackmail power) 얼마나 있나, 모두에서 매우 취약, 단순히 수가 작기 때문일까

2) 유권자 속의 정당 : 어떤 사회적 갈등과 균열 대표하나? 진보 개혁적이라고 부른다면 어떤 근거에서 그러한가? 신자유주의 정당인가 아닌가? 노동문제에 대한 민주당의 정책은? 토건국가에 반대하는 정당이라 할 수 있을까? 뉴타운 정책 지지 정당인가 아닌가?

3) 조직으로서의 정당 : 누구를 대표하나? 누구의 이익을 조직하려 하나? 호남이외 지지기반은 누구? 누가 당원인가? 지난 2년간 당원은 얼마나 늘었나? 당원의 참여가 당의 재정기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당 사무국은 어느 정도 활력 있나? 공직자를 선발하는 데 있어서 대중 참여와 정치 동원을 조직할 능력 있나? 당의 풀뿌리 기반을 지배하는 것은? 공천이 돈과 영향력의 거래가 아니라고 할 수 있나? 리더십의 구조, 대안적 통치자 후보군은 존재하고 기능하고 있나?


- 도대체 민주당은 어떤 정당인가, 명료하게 정의하기 어려워.

- 이념적으로나 정책적으로 어떤 정당이라 말할 수 있을까, 뉴민주당플랜? 그런데 그 플랜의 발표가 가져온 영향력은? 그 플랜이 민주당의 실제 모습 혹은 미래 모습이라고 믿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한나라당도 비판하지 않고 조중동도 문제 삼지 않는 플랜, 진보개혁 세력 사이에서도 논의가 없는 플랜, 이런 사실이 말해주는 바 커. 민주당은 스스로도 어떤 정당인지 정의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에.


- 민주당은 어디에 있을까. 잘 보이지 않아. 대학, 공장, 재래시장, 농촌 등 시민사회 내지 생활세계 속에서 민주당 발견되나? 한마디로 말해 사회적 기반 없는 정당, 언론에만 존재하는 페이퍼 정당. 당원? 선거 때만 동원하는 페이퍼 당원. 그러다 보니 점점 더 두드러지는 호남향우회의 역할. 12년 전 과거 야당이었을 때 가졌던 정당으로서의 활력은 이제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워.


- 대안정부로서 민주당의 미래는 있는가, 확실하게 말하기 어려워. 민주당 정치엘리트들의 개성적 매력은 점점 발견하기 어려워. 말은 경쟁적으로 더 진보적으로 개혁적으로 하나 신뢰는 가지 않아. 변명 내지 알리바이로 보일 때 많아. 그런데 왜 집권해서는 그렇게 실천하지 않았나 하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 뉴민주당플랜이 진정성이 있으려면 지난 10년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 하지 못했는지, 무엇을 배웠고 다음에 집권하면 어떻게 잘 할 수 있는지 등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접근이 있었어야. 또한 당의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 있었어야 하고 위로부터는 사무처를 아래로부터는 당의 풀뿌리기반을 어떻게 활력 있게 할 수 있는지 이야기가 있었어야. 결국 뉴민주당플랜은 이런 것을 말하지 않기 위한 말을 위한 말 혹은 누군가 자신의 브랜드로 활용하기 위한 말의 상품화 이상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어.


- 결론적으로 말해, 지금의 민주당은 과거의 민주당과는 다른 정당, 말의 위선성이 더욱 심해지고 정치엘리트들의 권위는 사라져. 본인들이 어떤 정치인인지 무슨 생각을 갖는 정치인인지 점점 잘 알 수가 없어져. 한나라당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상대편 이상 무슨 기능을 하는 존재인지 말해줄 수 있어야.



4. 누가 야당이 될까


- 강한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대안정부로서의 기능은 결국 누가 제1야당인가에 모아지는 문제, 단순히 의석의 규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다음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대중적 권위의 문제

- 이른바 "반엠비 후보연합"의 지루한 시간이 진행되는 동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대표되는 두 진보정당의 독자적 기반 상당히 위협, 지금 상태로 간다면 한국에서 진보정치의 영향력은 거의 무시될 수준으로 떨어질 가능성 높아.

- 국민참여당도 성과를 얻지 못한다면 지지자들 사이에서 대중적 실망과 제도의 장벽에 대한 좌절감 가질 수 있어

- 민주당은 성과를 얻어도 당의 구조적 문제는 그대로 남겠지만, 문제는 성과를 얻지 못할 경우 즉 역대 한국 지방선거에서 보여주었던 중간평가적 기능과 집권당 패배의 결과가 아닌 결과가 나온다면 상황은 매우 다르게 나타날 것이라는 점. 아마 민주당 내부 문제로 그치지 않고 야권 재편의 압박 커질 듯.

- 그러나 더 큰 변수는 박근혜 당의 선택이 어떨 것이냐에 달려 있어. 지난 해 10월 재보선 이후 한국 정치에서 제1야당의 지위는 박근혜 당이 되었어.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성과 거두지 못한다면 민주당에서조차 박근혜 당으로서의 이탈 분위기 커질 수 있어. 어찌 보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파괴적인 결과일 것. 이명박 당과 박근혜 당이 여야 정치체제의 중심이 된다면 그때의 한국 민주주의는?

- 결국 이번 지방선거는 민주당의 존재가 한국 민주주의에서 어떻게 평가될지를 본격적으로 테스트 하는 사례가 될 것으로 보임.




5. 어떻게 해야 하나


- 잘 모르겠음. 그러나 추상적으로 말한다면 지금 한국 민주주의의 중심 과제는 야당을 만드는 문제. 그 중심이 민주당이 되든 아니든 진보세력과의 관계는 어떻게 할 것이든 아니든 결과적으로는 대안정부로서의 권능을 대중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정당을 만드는 일.

- 한국사회는 기본적으로 매우 정치화된 사회. 모두가 정치 비난하고 거부해도 이 사실은 변함이 없어. 오히려 그런 강한 반정치성향이 강한 정치성을 반영하는 측면 있어. 현재의 정치에 실망하고 좌절한 유권자 세계에 매우 강력한 에너지원 존재. 이 측면이 한국정치를 늘 예측 불가능하게 하고 다이내믹하게 만들어. 누가 이들을 다시 정치의 세계로 초대할 것인가의 문제는 여전히 한국정치의 최대 관심. 그러나 이 노력이 이번엔 새로운 종류의 강력한 정당의 조직화를 통해 나타나야 한다고 봄.

- 현재의 정당체제에 의해 대표되고 있지 못한 영역을 그저 무정형적이고 불확정적인 존재로만 보는 것은 곤란. 기본적으로 한국사회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가치에 바탕을 둔 정치의 권능으로 자본주의가 갖는 여러 문제를 완화하고 개선해가야 하고, 이때 핵심은 노동문제, 노동자라 부르든 직장인이라 부르든 일하는 사람들이라 하든 임금에 의존해서 사는 사람들의 권리가 커지는 것이 좋은 시장체제의 징표. 나아가 이들의 정치 참여가 조합을 통해 조직화될 때 민주주의 튼튼해져. 노동에 기반을 두지 못한 민주주의 혹은 개혁 진보정당은 한마디로 허구. 노동의 기반이 약한 예외적 국가라고 알려져 있는 미국조차도 선거에서 민주당의 정치자금의 50% 가까이는 노조로부터 오는 돈. 노동문제를 과거 마르크스주의의 계급문제적 관점이 아닌, 가장 강력한 이익결사체 가장 중요한 생산자 집단으로 인식하는 다원주의적 접근이 한국정치엔 완벽하게 결핍되어 있음.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무차별적으로 확대되어 온 대기업의 대형마트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중소 자영업의 세계, 교육의 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 대학과 학교 사회, 개발과 예산 확보에 휘둘리는 지방정치와 농업 등의 세계 역시 모두 정당이 존재해야 하고 거꾸로 말하면 제대로 된 정당이라면 그 세계에서 기능하는 조직이어야 함. 여의도와 언론에만 있는 정당인 한, 제아무리 진보를 말하고 개혁을 말해도 기본적으로 기득권정당 이상일 수 없어.

- 지금 한국정치는 보수냐 진보냐의 기준으로 말할 수 없어. 그런 기준조차 사치일 수 있어. 지금 한국정치는 민주주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보통의 평범한 시민들을 보호하지도 참여시키지도 못하는 상황. 기본적으로 이 기능은 현재의 야당에 기대하는 역할, 결국 오늘날 한국정치의 중심 문제는 야당의 문제. 당을 제대로 바꿀 수 있는 사람, 제대로 된 당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한국 민주주의가 필요로 하는 정치인이 될 것. 기본적으로 현대 민주주의는 정당정부(party government)이기 때문. 김대중정부, 노무현정부, 이명박정부가 아닌 민주당정부, 열린우리당정부, 한나라당정부로 부를 수 있게 될 때 정당 민주주의는 자리 잡게 될 것임. 그러나 그 전에 어떤 정당인가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임. 결국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면 어떤 정당을 만들고 복무할 것인지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럴 과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한다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봄.







참고) 경향신문 3월 26일자 칼럼

http://www.khan.co.kr/kh_news/art_view.html?artid=201003251806245&code=990000



<목소리 없는 다수>


이번 지방선거를 관찰하러 온 외국인 정치학자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주요 선거 이슈는 무엇인가?” 세종시, 4대강, 반정부 선거연합 등을 열거했다. 논리적으로는 사회 전체를 찬성과 반대로 양분하는 ‘최대 동원의 정치’를 불러올 만한 이슈들이다. 격렬한 갈등이 이어지고 그에 따라 선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투표 참여 의지 역시 고조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그래서 투표율이 얼마나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그만 말문이 막혔다.


평등한 투표의 권리가 정치공동체 전체의 정당한 결정으로 이어지는 것이야말로 ‘선거의 민주성’을 말할 수 있는 최소조건이라고 할 때, 일정 정도 이상의 투표율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50년 동안 “서유럽 민주주의의 안정성”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기 동안 서유럽 국가들이 평균적으로 80% 가까운 투표율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떨까? 민주화 이후 최초 선거였던 1987년 대선과 88년 총선에서 한국의 투표율은 각각 89.2%와 75.8%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는 63%와 46.1%로 떨어졌다. 정확히 20년 만에 26.2%와 29.7%의 유권자가 투표시장을 떠났고, 비율로 보면 각각 29.4%와 39.2%가 감소했다.


투표율 20년새 급격한 하락


내가 아는 한 이보다 빨리 투표율이 떨어진 나라의 사례는 없다. 전쟁이나 혁명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됐다. 20세기 초 미국처럼 유권자 자신이 나서 등록해야만 하는 제도를 도입해 하층의 투표를 어렵게 한 것도 아닌데도 그랬다. 어찌됐든 한국 정치에서 명실상부한 제1당은 무당파가 되었다. 누가, 왜 투표하지 않을까?


정당이론의 패러다임 하나를 개척한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는 “상당수의 투표 불참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체제에서 해소되지 않은 역사적 긴장의 본질에 대해 통찰력을 갖게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투표 불참자의 수는 결국 그들이 “기대하는 대안이 억압된 크기”를 말해준다고 보았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선거란, 경쟁하는 정치조직 가운데 하나를 보통의 시민이 선택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유권자에게 표를 요구하는 정치세력들이 먼저 우리 사회가 해소해야 할 “역사적 긴장들” - 남북관계와 평화체제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압축적 경제성장의 부정적 효과를 개선하는 문제일 수도 있고, 급격히 심화되어 온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 에 대해 선택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을 충실히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대다수 보통의 시민 유권자들에게 정치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찰 없이, 또 그런 기준에서 볼 때 우리 정치가 결핍한 것들에 대한 비판적 반성 없이, 나아가 왜 다수 유권자들이 현재의 정당들을 선택의 대안으로 느끼지 못하는지 하는 그들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함 없이, 투표를 해야 할 유권자의 의무를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큰 인기를 누리는 연예인을 홍보대사로 위촉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으로는 지금과 같은 나쁜 상황을 변화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정치 힘은 ‘목소리’ 주는 것


지난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사명을 “목소리 없는 사람에게 목소리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치에서 목소리를 갖지 못했던 하층의 유색인종들이 투표를 통해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는 이번 의료보험 개혁안을 통해 목소리를 갖지 못했던 무보험자 3200만명에게 목소리를 줄 가능성을 열었다. 민주정치가 갖는 민중적 힘은 적어도 미국 정치에서 그런 식으로 표출되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누가 목소리 없는 다수 유권자들에게 목소리를 갖게 할 수 있을까? 이번 선거도 그렇고 아마도 한동안 한국 정치의 중심 문제는 바로 이 질문이 될 것이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꼬마기자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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