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단연 인기 드라마는 <선덕여왕>이다. 선덕여왕 시청자들은 잘 아시겠지만, 이 드라마는 덕만공주(이요원)와 미실(고현정)의 대결구도를 둔 신라의 권력싸움을 담았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미실은 지금까지 약 20여 년 동안 신권(일종의 권력)을 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덕만이 신권을 쥐게 되었고, 덕만은 그 신권을 백성들에게 공개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그 공개의 일환으로 첨성대를 만들려 하고 있다. 이런 덕만의 행동에 모든 이들이 우려를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덕만은 자신의 뜻을 굽히려 하지 않고 있다.
다음에 소개하는 대화는 미실이 가지고 있던 권력을 덕만공주가 가지게 된 후 덕만과 미실이 나누는 대화다. 꽤나 숨 막히는 말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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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29화 '덕만과 미실이 나누는 대화'-
미실: 그래서 신권을 포기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덕만: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미실: 공주님, 세상은 '종'으로도 나뉘지만 '횡'으로도 나뉩니다.
덕만: 무슨 말씀이십니까?
미실: 세상을 '종'으로 나누면 이렇습니다. 백제인, 고구려인, 신라인, 또 신라 안에선 공주님을 따르는 자들, 이 미실을 따르는 자들. 하지만 세상을 횡으로 나누면 딱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 세상을 횡으로 나누면 공주와 저는 같은 편입니다. 우린 지배하는 자입니다. 미실에게서 신권을 뺏으셨으면 공주님께서 가지세요.
덕만: 허면 언젠가 다시 빼앗길 수도 있겠죠.
미실: 그게 두려워 버리시는 겁니까?
덕만: 버리는 게 아니라 백성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미실: 그게 버리는 겁니다. 그걸 버리고 어찌 통치를 하려 하시는 겁니까?
덕만: (독백: 그러한가? 버리는 것인가? 통치를 할 수 없는 것인가?)
미실: (마치 속을 꿰뚫어보듯) 예, 공주님. 우린 정쟁을 하고 있습니다. 정쟁에도 규칙이 있는 것입니다. 이건 규칙 위반입니다. 무엇으로 왕권을 세우고 조정의 권위를 세우시겠습니까?
덕만: (무엇으로 내 권위를 세우느냐?)
미실: 무엇으로 백성을 다스리려고 하는 겁니까?
덕만: (무엇으로 다스리느냐?)
미실: 말씀을 해보세요. (완전 윽박지르며) 무엇이냔 말입니까?
덕만: 진실이요.
미실: 진실? 무슨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까. 백성들이 공주님을 새로운 천신황녀라 외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무슨 진실이요? 난 사실 아무 것도 모른다, 나에겐 신비스런 능력이 없다, 이런 진실이요?
덕만: 격물이란 사물의 이치를 밝히는 것이며 진실을 밝히는 것입니다.
미실: 그래서요?
덕만: 세주께선 진실을 밝히는 격물을 가지고 마치 세주께서 천기를 운영하는 듯 한 '환상'을 만들어냈습니다.
미실: 백성은 '환상'을 원하니까요. 가뭄에 비를 내리고 흉사를 막아주는 초월적인 존재를 원합니다. 그 '환상'을 만들어내야만 통치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덕만: 아니요. 백성은 '희망'을 원하는 것입니다.
미실: 백성이 '희망'? 공주님, 백성이란 것이 군중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 인줄 아십니까.
덕만: (무, 무서워? 미실이 무서워 하는 게 있어?)
미실: 군중의 '희망' 혹은 '욕망', 이런 것들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르시지요.
덕만: 예, 저는 무섭지 않습니다. 백성이란 적어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을 원하는 것이지 '환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미실: 백성은 왜 비가 오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백성은 일식이 어찌 일어나는지 알고 싶지 않습니다. 누군가 비를 내려주고, 누군가 일식이란 흉사를 막아주면 그만인 무지하고 어리석은 존재들입니다.
덕만: 그건 모르기 때문입니다.
미실: 예, 모릅니다. 알고 싶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뭘 원하는지도 모릅니다.
덕만: 백성이 책력을 알면 절기를 알게 되고 스스로 파종을 할 때도 알게 됩니다. 그리 되면 비가 왜 오는지는 몰라도 비를 자신들의 농사에 어찌 이용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렇게 한 발짝씩이라도 더 나아가고 싶은 게 백성입니다.
미실: 안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들에게 안 다는 것은 피곤하고 괴로운 일입니다.
덕만: '희망'은 그런 피곤과 고통을 감수하게 합니다. '희망'과 '꿈'을 가진 백성은 신국을 부강하게 할 것입니다. 저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과 함께 그런 신라를 만들 것입니다.
미실: (설마, 이 아이가 원 하는 것이…)
덕만: (이게 내가 하고 있는 말이 맞는 거야?)
미실: 공주님, 미실은 백성들의 '환상'을 이야기하고 공주께선 백성들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허나, 그 '희망'이라는 것이 그 '꿈'이라는 것이 사실은 가장 잔인한 '환상'입니다. 공주께서 이 미실보다 더 간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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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첨성대는 안전할까?
재밌다. 그러니까 덕만은 '희망론', 미실은 '환상론'이다. 대화를 자세히 보면, 덕만이 생각하는 ‘희망’과 미실이 생각하는 ‘희망’이 다르다.
덕만에게 '희망'은 곧 '꿈'이지만, 미실에겐 '희망'은 곧 '욕망'이라 말하고 있으며, '희망'을 '꿈'이라고 말하는 덕만에게 '꿈'이란 것은 '가장 잔인한 환상'이고 말하고 있다. 미실의 말이 일리가 있을 수도 있다. 안다는 건 고통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실이 말한 것처럼 희망은 그런 피곤과 고통을 감수하게 한다. 교육만화에나 나오는 굉장히 낯간지러운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선덕여왕’ 안의 상황과 2009년 지금의 상황을 비교해본다면, 대한민국 이래 생긴 첫 정권교체, 그리고 김대중 정부에 이은 노무현 정부까지 참여정부의 시대는 신권을 버린 덕만공주의 시대였다. 그리고 다시 그 지배 권력은 미실에게 옮겨가고 있는지도.
우리의 첨성대는 안전한가? 적어도 여당이 강행처리한 ‘미디어법’은 백성에게 환상을 조장하는 미실의 신권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그렇다. 정말로 애석한 일이지만 지난 7월 22일 날 열린 대리투표와 부정투표로 얼룩진 미디어법 직권상정은 첨성대를 허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논하는 장이었다.
☞ 덕만의 희망론, 희망천배 천정배
천문을 독점해온 신당이 백성무지를 조장해 사익을 채우려고 다시 몸풀기를 하는 요즘, 우리에게 희망이란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며 우습지만 나는 이런 상상을 해봤다. 언론악법 원천무효 서명운동으로 모으고 있는 서명 하나하나는 무너진 첨성대를 새로 쌓아가는 보수공사라고.
첨성대의 석재 개수나 크기 하나하나가 다 천기운을 상징한다. 천만 명이라는 우리의 목표치가 다 민주주의를 상징한다. 천만 명? 그야말로 맨바닥에 헤딩하기,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더 이상 환상으로 머물 수 없다. 서명 하나 하나가 민주주의로 재탄생할 것이며 서명 하나 하나가 희망 그 자체이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읊조리며 명동을 나서는 요즘, 덕만의 희망론을 믿어보려한다. 오늘따라 유난히 ‘희망천배 천정배’라는 슬로건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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