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의원과 함께하는 정책연구 모임 포럼 안흥민 정기 세미나에 한홍구 한신대 교수님이 초청강연을 해주셨습니다.
한홍구 선생 그는 6.10 대회를 민주당 의원들이 사수하기 위해 서울광장을 접수했을때 홀연히 나타나 시민들과 의원들을 상대로 속시원한 역사 강연을 했던 분입니다. <2009년 9월 8월 포럼 안흥민에서 "지금 이순간의 역사"라는 주제로 강의하는 한홍구 교수>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민주개혁세력의 현재, 민주화의 평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명쾌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역사학자로써의 깊은 통찰과 낙관에 근거한 분석이 감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일일이 녹취하지 못했지만, 생생한 감동과 간단한 메모로 재구성한 한홍구 선생의 강연을 재구성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감동이 흐릿해지면 강연내용을 도저히 복기할 수 없을 것 같아 밤늦게 컴퓨터에 앉았습니다.
한국 민주주의는 "~같기도" 민주주의
한국 민주주의 현 주소는 민주화간 된 것 같기도 하고 안된 것 같기도 한 "같기도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된 정부에 의해 민주주의가 역발진하는 상황이 초래한 비극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분명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달성한 세계 유례없는 자랑스러운 국가임이 분명합니다. 우리의 민주화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필리핀도 장기독재를 물리치고 정권 교체에 성공했지만 이후 대통령들은 필리핀의 7대 가문내에서 배출되고 있습니다.
55만년만에 처음 정권교체를 경험한 일본도 참의원 지역구를 살펴보면 대부분 의원직을 세습하고 있습니다.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증거는 이씨 조선 이후 최초 평민이 대통령이 된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
우리나라의 민주화는 가문도 없고, 신분도 낮은 평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통령에 당선시켜낸 대단한 민주주의입니다. 누군가 김대중 대통령 당선을 32년만의 정권교체라고 칭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너무나 정권교체의 의미를 과소평가한 것입니다. 평민의 아들로 태어나 밑바닥에서 출발하여 권력을 획득한 사건은 이성계 이후 처음있는 일입니다.
한국민주주의는 밑바닥에서 출발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저력있는 민주주의 입니다. 이것이 한국민주주의가 가진 너무나 큰 장점이자, 민주주의 발전의 산 증거입니다.
한국이 민주화가 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사망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과 언론의 토끼몰이에 내몰려 부엉이 바위에 몸을 던졌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연세를 보면 호상으로 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호상이 아닙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진 것 같다고 절규하시면서 그의 생애 마지막 두달을 가장 치열하고, 처절하게 싸우다가 가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민중에게는 무서운 저력이 있습니다.
장기독재를 위해 단행된 유신이라는 역사적 반동이 7년만에 총성 한방으로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장기독재를 위해 광주항쟁을 진압하고, 피로써 집권한 전두환 정권 역시 7년만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장기독재를 꿈꾸며 1990년의 3당 합당 정권교체로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죽음을 결코 헛되이 보낸 적이 없기때문입니다.
고종이 승하하시고, 3.1 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순종이 승하하시고 6.10 만세 운동이 있었습니다. 김주열의 죽음이 4.19를, 박종철의 억울한 죽음이 6.29를 만들어냈습니다.
지금은 새시대를 어떻게 만들것인가 결정해야하는 중차대한 시점
두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한 시대가 마감했다고들 합니다. 지금은 새시대의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혼돈의 상태입니다. 새시대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너무나 중차대한 시점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우리는 이 시점에서 민주화의 의미, 그 성과에 대한 냉철한 반성과 과학적 평가가 필요합니다.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민주화의 성과와 한계를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민주정권 10년은 민주주의와 경제를 동시에 성취
저는 요즘 저소득층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하고 있습니다. 생활보호대상자도 만나고, 차상위계층도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민주화 정권 10년동안 살기 힘들어졌다는 아우성을 외칩니다. 정말 뼈아픈 지적입니다.
민주화의 성과가 없었다고 매도 해서는 안됩니다. 박정희는 독재로 민주주의는 포기하고, 경제만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민주정권 10년은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성취한 정권입니다. 물론 대중들이 인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실제 대한민국의 살림살이가 나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민주정권 10년이 매도된 이유는 민주화 과실이 재벌과 기득권층에 집중되었기때문
민주화의 성과가 매도된 이유에 대해서는 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화의 성공을 보지 못한 이유는 민주화의 덕을 재벌이 가장 크게 보았기때문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씀하셨듯이 이제 권력은 시장에 있습니다. 재벌이 국가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시대입니다.
유신정권,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권력의 끝이 안보이니까, 재벌이 권력 앞에 엎드렸습니다. 전두환 정권 당시에는 국제그룹이 당시 회장으로 있던 양정모씨가 군사정권에 밉보여서 재계 서열7-8위임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에 공중분해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재벌은 결코 권력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지금은 권력의 임기가 정해져있기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재직당시, 전경련 회장단과 삼계탕집에서 회동을 추진한 적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참석했지만 그 이후에는 회장단들이 오지않아 청와대 참모들끼리 삼계탕을 먹고 돌아갔던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언론도 민주화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80년대에 서슬시프런 '보도지침'이 있었습니다. 정권에서 마음대로 기사도 편집하고, 추가도 시키고, 삭제도 시켰습니다. 전두환 정권 시절 당시 대구에서는 백여명의 희생자를 낸 가스관 폭발사
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아홉시 뉴스는 전두환, 이순자 여사의 행보를 제일 먼저 보도하고, 4번째로 가스관 폭발참사를 보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기사를 만들고, 보도했던 분들의 심정이 어떻했을지 상상이 갑니다. 민주화로 덕본 집단이 또 있습니다. 사립학교, 대형교회 등 재산 세습이 가능한 분들도 엄청난 덕을 보았습니다.
2007년 대선결과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민주세력은 역대 최대표차의 패배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후보는 유권자가 약 300백만명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2002년 이회창 후보 보다 4만표를 받는데 그쳤스빈다. 2002년 당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600백만표가 투표장에 안 나온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민주진영이 취약한 것은 사실입니다. 6.25 전쟁 직후 민주 대 반민주는 0: 100이었습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은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외환위기, 이인제 후보의 500백만표, DJP연합, 김현철 스캔들 이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음에도 30만표로 간신히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2002년 재집권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민주개혁진영이 스스로 체력을 키워 집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009년의 말죽거리잔혹사
2007년 대선은 백약이 무효한 선거였습니다.양극화 진행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불안감이 경제성장에 매달리게 된 결과입니다. 이미 대한민국은 저출산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습니다. 40년동안 국민소득이 100배가 늘었지만 그 과실이 국민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은 결과가 초래한 비극입니다.
1966년 말죽거리에 땅 한평이 30원 했습니다. 지금 말죽거리는 땅 한평에 3,000만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당시에 말죽거리에 땅을 한평이라도 산 이들에게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말죽거리의 신화"입니다. 그러나 말죽거리에 땅한평도 사지 못한 이들에게는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말죽거리 잔혹사"인 것입니다.
잊혀진 민주화의 두가지 성과
민주화의 성과는 두가지입니다. 87년 민주화 이후 노동자들의 분배 요구가 빗발쳤습니다. 이로인해 70-80년대 일방적 희생을 강요당했던 노동자들의 임금이 높아지고, 살림살이가 나아졌습니다. "영화"관객수의 급격한 증가는 노동자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훌륭한 증거입니다. 70년대 장미희씨가 출연했던 '겨울여자'가 60만관객을 동원한 것이 서편제 등장하기전까지 가장 흥행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노동자의 살림살이가 나이지고, 노동자들이 주말에 여가를 즐기게 되면서 영화를 보는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지금, 60만이 관람한 영화는 쪽박입니다. 천만명 이상이 관람한 영화가 나온다는 것은 노동자들의 살림살이가 그나마 나아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군대에서 사람들이 덜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70년대 베트남 전쟁을 빼고 일년에 군대에서 1,300-1,400백명의 젊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80년대 1,000명 이하였지만 약 800여명 정도의 젊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후반은 약 120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사회가 군대를 본격적으로 감시한 것입니다. 어머니들이 가슴으로 자식을 묻지 않는 것, 이것은 정말로 민주화의 중요한 성과입니다.
지금은 조문민심을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가를 고민할때
노대통령 서거이후 인터넷에서는 "지.못.미"라는 단어가 유행했습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때 매일 대한문 앞에 있는 시민분향소에 나갔습니다. 당시 대한문에 나왔던 시민들의 생각 역시 "지못미"였습니다. 조문민란이 일어났다고 했을 정도로 수많은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지금은 민주정부 십년에 실망한 우리 국민 600백만명을 어떻게 끌어들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강부자, 고소영을 다 모아도 300백만명이 넘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1,100백만명의 지지를 획득했습니다. 비정규직, 실업자 등 이 사회의 가장 하층에 계신 분들이 이명박 정권을 지지한 것입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빈곤한 분들이 이명박 정권을 지지한 이유를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지붕도 없는 집에서 유산싸움은 패가망신의 지름길
지붕과 같이 존재만으로도 민주개혁 진영을 지켜주시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떠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데 앉은 기분입니다. 지금은 "저문짝 내꺼야"라고 싸우면 패가망신하기 딱 좋습니다. 지금은 민주개혁진형이 밑바닥에서부터 치열하게 진정성을 가지고 싸워야 할때입니다. 그 유산을 탐해서는 안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후유언
노무현 대통령의 억울한 죽음이후 두달동한 아마 김대중 전 대통령은 너무나 열심히 싸우다 가셨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두달동안 온몸으로 유언을 쓰고 가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3대 위기를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관계의 위기로 알아듣기 쉽고, 너무나 분명하게 정리해주셨습니다.
3대위기의 극복을 위해서는 민주세력이 대동단결하라고 주문하셨습니다.
이는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는 큰 형님뻘리 민주당이 욕심부리고, 기득권을 챙기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명박 정권과 싸우기 위해 민주당이 민주세력 대동단결을 위해 통크게 양보하라는 주문입니다.
또한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하셨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자신처럼 독재정권에 맞서 구속당하고, 감옥에 가고, 추방당하는 반드시 형극의 길을 가라는 것을 촉구하는 말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위기를 막기위해 작은 무엇인가라도 사력을 다해 해나가라는 말씀입니다. 인터넷을 하는 사람은 인터넷에 글도 올리고, 글 쓰는 능력이 안되면 댓글달고, 퍼나르기라도 하고, 인터넷도 안되면 1인 시위라도 하고 그것도 안되면 집 앞 담벼락에 욕설이라도 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홍구 선생님은 민주세력이 분발을 촉구했습니다. 낮은 마음으로 진정성을 가지고 최선을 싸워줄 것을 거듭 당부하셨습니다. 천정배 의원 같은 분들이 최선을 다해 싸울 수 있도록 격려도 해주시고, 질책도 해주셔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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